우리의 명절과 민족 문화
들어가면서
황보근영(fromhb@hanmail.net)
명절과 음양 사상 / 명절과 보름달 / 명절과 차례, 성묘 / 명절과 음식, 떡
- 우리의 명절에는 철학이 있다. 동양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음양(陰陽)사상일 것이다. 우리의 명절은 바로 음양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태양력을 기준으로
하는 24절기와 태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여러 명절을 함께 사용해 온 것 또한 음양의 조화이며
명절의 짜임새 또한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 수(數)에 있어서 홀수는 양(陽)이며 짝수는 음(陰)이다. 양의 기운이 왕성한 1, 3, 5, 7, 9의 홀수
달에는 그 달과 같은 홀수 날을 명절로 삼으면서 양기(陽氣)를 북돋우고, 음의 기운이 왕성한
2, 4, 6, 8, 10의 짝수 달에는 음기(陰氣)가 가장 왕성한 보름날을 명절로 삼아서 음양의 기운을
조화롭게 받아들이고자하는 의도로 꽤나 합리적인 구조로 짜여져 있다.
- 이를테면 홀수가 겹친 1월 1일은 설날이요, 3월 3일은 삼짇날이며, 5월 5일은 단오(端午)날,
7월 7일은 칠석(七夕)날, 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이다. 짝수달인 2월 보름은
중화절(中和節)인데 대체로 한식(寒食)과 겹쳐 1일로 옮겨 쇠며, 4월 15일은
연등(燃燈)절이었는데 4월 초파일로 옮겨졌으며 6월 보름은 유두(流頭)요, 8월 보름은
추석(秋夕)이며, 10월 보름은 하원(下元)이다. 11월 휴일은 동지(冬至), 12월은 납일(臘日)로
여타 달의 휴일 원칙에서 예외이긴 하나 한 달에 한 번 논다는 데는 다를 것이 없다. 여기에
상원(上元)-입춘(立春)-한식(寒食) 등 시후(時侯) 명절이 끼어있다. 동지(冬至), 입춘(立春),
한식(寒食) 등의 명절은 태양력에 의한 것이다.
음(陰) |
짝수(여성) |
중화절(2월 1일 또는 보름) · 연등절(4월 보름) · 유두(6월
보름) · 추석(8월 보름) · 하원(10월 보름) |
달(태음) |
명절 : 정월 대보름, 백중(7월 보름) |
양(陽) |
홀수(남성) |
설(1월 1일) · 삼짇날(3월 3일) · 단오(5월 5일) · 칠석(7월
7일) · 중양(9월 9일) |
해(태양) |
24절기 : 입춘과 동지 등. 한식(동지로부터 105일 이후) |
- 서양인들은 대체로 달에 대해 부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달(Luna)에 어원을
둔 루나틱(Lunatic), 루나시(Lunacy), 루니(Loony) 등이 모두가 '미치광이'나 '광기'를 뜻하고
있고, 역시 달에게 얻어맞았다는 뜻인 moon-struck도 '발광한다'는 뜻이다. 특히 보름달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생각하며 꺼려했던 것이다. 또한 몽고 사람들도 보름달을 몹시
싫어했다는데, 특히 우리의 추석인 음력 8월 15일 밤에는 문을 닫고 외출하지도 않았다 한다.
그러나 중국, 일본, 한국 등 월력(月曆)을 써온 한문 문화권(漢文 文化圈)에서는 달에 긍정적
이미지를 가장 강하게 갖고 있으며 특히 보름달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며 이를 명절로 승화시켜
반기는 민족은 우리 조상이 제일일 것이다.
- 동지(冬至)를 비롯한 24절기는 태양을 기준으로 하지만 우리의 명절은 유난히도 달과 관계가
깊다. 짝수 달뿐만 아니라 하물며 홀수 달도 우리 세시에서 매월 보름날은 명절 아닌 날이 없고
여인의 나들이가 보장되는 않은 밤이 없었다. 정월 대보름에는 다리 밟기와 달맞이로
밤나들이, 2월 보름은 연등(燃燈)날이라 밤나들이, 삼월 보름은 답청(踏靑)날이라 보리밭
밟으려 밤나들이, 6월 보름인 유두절(流頭節)엔 동으로 흐르는 계곡 물에 머리 감으러
밤나들이, 7 월 보름인 백중(百衆)은 조상의 명복을 비는 상사(上寺) 밤나들이가 보장되었던
것이다. 또한 오늘날 마을 단위로 거행되는 동제(洞祭)도 정초 30%, 대보름 40%, 10월 기타
30%로 달과 연관되며, 정월 대보름의 달맞이, 달집태우기, 줄다리기의 풍속과 추석 대보름의
달마중, 강강술래의 풍속놀이 등이 달밤에 행사가 집중되었다.
- 우리 조상들은 여인의 다산력(多産力)은 바로 달의 정기(精氣)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래서 보름달이 뜨면 여인들이 달의 정기(月精氣)를 실컷 흡입하게끔 밤나들이를
풍속적으로 보장을 했을 것이다.
- 영화 [씨받이]를 보면 아들자손을 낳게 해달라며 보름날 달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키길 아홉
씩 아홉 차례 곧 81번 기통(氣通)시키는 흡월정(吸月精) 하는 모습이 나온다. 달의 정기로
아기가 생길 기력을 보강했던 것이다. 달빛을 받은 이슬을 거두어 엿을 고아
월정고본환(月精固本丸)이라는 보음제(補陰劑)까지 만들어 아이 못 낳는 딸에게 보내기도
했다.
- 달[月]은 음(陰)이며 땅이며 여성(女性)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진다. 우리 민족은 땅과 물과
농사에 삶의 뿌리를 박으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농경민족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달을
그 어느 것보다도 신성시 해왔다.
- 달과 여인과 풍요의 삼각함수에서 휴식과 축제 그리고 기원으로 의식화(儀式化)된 것이 바로
우리의 명절이다. 이상에서 보면 우리 민족은 태양과 하늘 신을 섬긴 것보다 어머니로서의
달신과 지신(地神)을 더욱 숭상해온 달의 민족임에 틀림없다.
- 우리 선조들은 조상이 돌아가신 날 드리는 기제(忌祭)말고도 명절날 차례나 성묘로써 조상을
또 찾고 모신다. 정초 설 차례, 한식 성묘, 백중 상사(上寺), 추석 차례와 성묘를 하고 또 3월
3일(重三日)과 9월 9일(重九日) 등의 명절에 가문끼리 모여 시제(時祭)를 올렸던 것이다. 여타
다른 명절 때에도 살아있는 이들만이 단순히 먹고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돌아가신 조상님께
감사드리고 생사(生死)가 일여(一如)하는 한마당에서 경건하게 치러지는 차례를 올렸다.
- 차례(茶禮)는 불교 의식에 뿌리를 두고있다. `백장청규(百丈淸規)'란 불교 문헌에 보면 차례란
한 솥에 끓인 차(茶)를 부처님께 바치고 또 공양 드리는 사람이 더불어 마심으로써 부처와
중생이 하나가 되고 또 절 안의 스님과 신자가 같은 솥에 끓인 차를 나누어 마시면서 이질
요소를 동질화시키는 일심동체 원융회통의 의례가 차례이다.
- 이 차례가 우리 조상의 제사 의식에 도입되어서 조령(祖靈)과 후손을 융합시키고 또 같은
가족-친척을 일심동체로 결속시키는 의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다만 한국의 신령들은
차(茶)보다 술을 더 좋아했던지 함께 나누어 마셨던 차가 술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이렇게 보면
명절 차례의 깊은 뜻은 종적으로는 돌아가신 조상님께 효를 지극히 다하며, 또한 횡적으로는
조상을 매체(媒體)로 하여 멀리 떨어져 이질화(異質化)돼 가는 일가 친척을 동질화시키며
일체감을 다지는 가장 한국적인 휴머니즘이 내포된 의식이랄 수 있다.
- 명절마다 특정의 세시 음식(歲時飮食)이 정해져 있는 것도 우연으로 넘겨 버릴 수 없는 심오한
저의를 찾아볼 수가 있다. 설날에는 떡국, 정월 대보름에 약밥, 달떡, 2월 한식날에는
솔떡(松餠), 삼월 삼짇날에는 진달래 화전(花煎), 사월 초파일에는 느티떡, 오월 단오날에는
쑥(수리취)떡, 유월 유두날에는 밀전병, 수단(水團), 7월 칠석날에는 수단(水團), 팔월 추석에는
오례송편, 구월 중양(重陽)에는 국화전과 국화주, 10월 상달에는 무시루떡, 11월 동지에는
새알심 넣은 팥죽, 섣달 납월(臘月)에는 골무떡, 참새고기 하는 식으로 명절 음식이 정해져
있고 설날에 떡국을 먹지 않으면 머리(知能)가 설다는 등의 먹지 않을 수 없게 끔 강제하는
금기(禁忌)까지 정해져 있었다.
- 이렇게 시절과 명절에 민감하게 떡을 달리해 먹었던 민족은 동서에 찾아볼 수 없다고 한국
문화에 조예가 깊었던 일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단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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