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傳統倫理blacktouch_up.gifblacktouch_next.gif

Ⅲ. 친척, 이웃, 교우관계와 바람직한 삶

[형성평가 정답 및 해설]

[문1-1] [정답]

    장유의 윤리의 기준은 ‘나이’이다. 철수는 현식의 고등학교 선배이므로 연장자이다. 그러므로 군대에 있을 때 현식이는 고참이지만, ‘나이’의 연장자이므로 철수를 형이라고 부르며 고등학교 시절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철수가 군 제대 후 현식의 조카인 수연이와 결혼을 함으로써 친척 윤리로 볼 때, 철수는 따라 수연이와 같은 세대가 되었고 현식이는 수연이 아버지와 같은 세대에 속하므로 철수는 현식이를 처삼촌이라 불러야 했다. 이렇게 같은 세대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항렬(行列)’인데, 철수와 현식이는 장유의 관계에서 친척 윤리인 항렬의 차이로 그 지위가 변화함에 따라 철수는 현식이에게 그에 합당한 예(禮)를 표해야만 한다.

[문1-2] [정답]

    노인 공경 및 부양의 문제는 가정에만 책임을 떠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 사업, 즉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노인 문제를 함께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1-3] [정답] ①

    제시된 내용은 족보에 대한 설명으로, 조선 중기에 이르러 족보의 간행이 활발해짐에 따라 항렬의 사용이 점차 먼 친척에 까지 확대되기 시작되었다.

[문1-4] [정답]

    성리학이 심화되고 종법의식의 강화, 사대 봉사제가 일반화 됨에 따라 자녀와 외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문1-5] [정답]

    제시된 그림은 친족(親族)의 가계도이다. ㄷ은 칭호는 사람 사이의 약속이므로 그 의미가 올바르게 전달될 수만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 ㄹ의 경우 촌수는 본래 방계(傍系)를 계산하기 위한 것이므로 직계 간에 촌수를 칭호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따라서, 바르게 설명된 것은 ㄱ, ㄴ, ㅁ이다.


[문2-1] [정답]

     공수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쥐는 것으로, 윗사람을 대하거나 의식 행사에 참여할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공손한 자세이다. ③번 서 있을 때 손의 위치는 배꼽 부분에 두어야 한다.

[문2-2] [정답]

    제시된 사진의 왼편은 산신제의 모습이고, 오른편은 서낭당으로 동제(동신제, 산신제)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마을 공동의 신을 섬김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풍요와 건강을 희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당산, 서낭당, 풍물 등은 마을의 상징과 함께 하였다. ①은 계(契)로서, 종류는 농계(경제적 이익 목적), 서당계(교육 목적), 상포계(상례 대비) 등이 있으며, 계원들은 현금이나 현물을 기금으로 출자하여 이익을 늘려서 필요할 때에 충당하였고 ②는 두레로, 노동을 조직화함으로써 모내기, 길쌈 등과 같이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을 처리하여 노동 생산성을 높여 나갔다. ④는 상부상조의 전통을 통해 이웃 간의 결속을 강화한 것이다. ⑤는 품앗이로, 시기와 작업의 종류는 따로 없었고, 개인이 하기에 힘겨운 일이면 수시로 행해졌는데 하루나 반나절을 기준으로 노동력을 교환하였다. 제공된 노동력에 대해서는 경제적 계산을 하지 않았다.

[문2-3] [정답]

     제시된 내용은 현대 사회의 이웃 관계의 문제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봉사가 필요하며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서 정겨운 이웃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문2-4] [정답]

    ④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왕에게 천거할 때 그 선택을 위해 활 쏘는 의식을 한다.(이것이 향사례이다) 향사례는 주나라 시대에 향대부(鄕大夫)가 3년 마다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왕에게 천거할 때 그 선택을 위해 행하는 활쏘기 의식이다. 고을의 원이 봄과 가을 두 계절의 길일을 택하여 행하였으며, ‘사(射)’의 의미는 “그 뜻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문3-1] [정답]

    (가)는 자연적 혈연관계이며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의하여 맺어지거나 단절될 수 없는 부모, 형제, 친척의 관계이다. 이해타산을 떠난 사랑(仁)이 중요시 된다. (나)는 사회적 관계이며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나 선택에 의하여 맺거나 끊을 수 있는 이웃, 친구, 직장 동료의 관계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정의(義)의 문제가 중요시된다. ⑤는 (가)이다.

[문3-2][정답]

    ①은 형제자매 윤리, ② 봉공(奉公) 정신으로 공(公)과 사(私)의 구별, ④ 효도의 한 방법으로 해가 저물면 부모님의 거처(잠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새벽(아침)에 되면 부모님께 문안을 올려 밤새 평안하심을 살피는 것, ⑤는 전통사회의 경제 윤리를 말한다. ③ 금란지교(金蘭之交)는 [역경(易經)]〈계사전(繫辭傳)〉상(上)에 “二人同心其利斷金, 同心之言其臭如蘭(두 사람의 마음이 같으니 그 예리함이 金石을 자를 수 있고,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향기가 蘭과 같다)”이라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문3-3] [정답]

    전통 사회에서 남녀 구별을 엄격하게 한 이유는 1) 성의 문란과 성도덕 타락 방지, 2) 남녀를 인격적 존재로서 존중, 3) 성의 신성성 보호, 4) 순결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문4-1] [정답] ④ 

    전통 의례 중 관례에 해당한다. ①은 혼례, ②는 상장례, ③은 공동체 의식, ⑤는 제례를 의미한다.

[문4-2] [정답] ⑤

    전통 사회에서 혼인은 평생의 반려자를 맞이하는 것이므로 의혼→납채→납기→납폐→대례→우귀의 6단계의 매우 신중한 절차를 거쳐 신성하게 이루어졌다. (가)를 우귀, (나)를 납폐, (다)를 납기, (라)를 대례, (마)를 납채라고 한다.

[문4-3][정답]

    ‘상장례’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상례는 크게 나누어 초종(初終), 습(襲)과 소렴(小殮) ·대렴(大殮), 성복(成服), 치장(治葬)과 천구(遷柩), 발인(發靷)과 반곡(反哭), 우제(虞祭)와 졸곡(卒哭), 부(祔)와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제(禫祭)와 길제(吉祭), 사당(祠堂) ·묘제(墓祭)의 9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문4-4][정답]

    제시된 사진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직단(社稷壇)’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9,075㎡이다.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한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의 제도를 따라 경복궁동쪽에 종묘(宗廟),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1395년(태조 4) 공사를 착수하여 설단(設壇)이 완성되자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신실(神室)과 신문(神門)을 세웠다. 사직단은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의 동·서 양단(東西兩壇)을 설치하였는데 동단에는 국사(國社:正位土神), 서단에는 국직(國稷:正位穀神)을 모셨으며, 단에는 주척(周尺)으로 높이 2.5자, 너비 1자의 석주(石柱)를 각기 세워 후토씨(后土氏)와 후직씨(后稷氏)를 배향하였다.
    단은 네모반듯하며 세벌장대석을 높이 3자가 되게 하고 한 변이 2장 5척(주척)의 크기로 평면을 설정하였다. 단의 4면에는 3층의 돌계단을 설치하였으며 단상 네 귀퉁이에는 구멍 난 돌이 박혀 있고 큰 쇠고리가 꽂혔는데, 이는 기둥을 세우고 차일을 치도록 설비하였던 것이다.
    사직단에는 1년에 네 차례의 대사(大祀)와 선농(先農)·선잠(先蠶)·우단(雩壇)을 제사지내는 중사(中祀), 그 밖에 기곡제(祈穀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 사직단의 설치와 함께 사직서(社稷署)가 생겨 제사의 수발을 맡았다. <끝>